만복은 국수 그릇을 무릎 사이에 놓고 먹고 있었다. 의자가 하나뿐이어서 태준에게 내주고 자기는 침상 끝에 걸터앉았다. 면이 입술에서 자꾸 끊어졌다. 이를 치료한 자리에 닿으면 아프다며 한쪽으로만 씹었다.
청안객잔 이층의 이 방은 만복의 잠자리이자 인쇄방의 종이와 보낼 책을 잠시 맡아 두는 곳이었다. 태준은 저녁 공부에 쓸 독본 여덟 권을 가져왔다.
“국물이라도 마시고 해.”
“들고 내려가면 돼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놓고 갔잖아.”
만복이 웃으며 그릇을 들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나자 태준은 꾸러미를 당겼다. 문이 안쪽으로 세게 밀리며 벽에 부딪쳤다.
앞선 사내가 일본말로 소리쳤다. 뒤따른 조선말 통역이 영사관 경찰이라며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사내 하나가 책 꾸러미를 발로 밀어 독본 두 권이 미끄러졌다.
만복이 국수 그릇을 내려놓았다.
“왜 이러십니까.”
통역이 만복의 이름을 불렀다. 묻는 말이 아니었다. 만복이 일어서자 일본인 수사자가 어깨를 눌러 도로 앉혔다. 그릇이 기울어 국물이 이불에 쏟아졌다. 만복은 저도 모르게 그릇부터 받았다.
“최만복 맞지?”
“맞는데요.”
수사자가 침상 밑에서 꺼낸 종이 묶음에는 중국말과 조선말 소식지가 섞여 있었다. 태준도 교정할 때 본 것이었다. 조선의 학교와 일터를 조선 사람이 정할 권리, 일본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 앞장에 실려 있었다.
통역이 그 대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걸 누구에게 줬어?”
만복은 종이를 나르는 일을 했다고 답했다. 통역은 같은 질문을 했다. 만복이 입을 열자 수사자의 손이 그의 뺨을 쳤다. 그릇이 떨어져 침상 다리에 부딪쳤다.
태준이 움직이자 문 옆의 사내가 그의 팔을 등 뒤로 꺾었다. 어깨가 먼저 아팠고 엄지 밑의 살도 비틀렸다.
“윤태준.”
통역이 말했다. 태준은 고개를 들었다.
“너도 여기 이름이 있어.”
그가 펼친 종이에는 조선말 이름들이 세로로 적혀 있었다. 윤태준 아래의 이정헌은 읽을 수 있었다. 그 밑은 통역의 손에 가려졌다. 더 보려 고개를 기울이다 벽으로 밀려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이정헌은 어디 있지?”
“오늘은 못 봤습니다.”
“우씨 종이점에서도 받아 가지?”
통역은 한경애라는 이름도 말했다. 독본을 받아 여자 일꾼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수사자는 태준의 안주머니에서 장부 주문 쪽지와 계산서, 아직 부치지 않은 편지를 꺼냈다. 전날 밤 연화에게 쓴 편지 사이에는 풀칠하지 않은 봉투가 끼어 있었다.
“경성 동래여관. 문연화.”
통역이 겉면을 읽었다.
“여기도 책 받는 데야?”
“제 편지를 받는 사람입니다.”
“무슨 사이인데?”
태준은 혀로 입술 안쪽을 눌렀다. 짠맛이 났다.
“혼인하려는 사람입니다.”
연화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혼인 날짜도, 살 집도 정하지 않고 남 앞에서 먼저 그렇게 불렀다. 다른 말을 찾는 동안 저 사내가 여관을 연락 거처라고 적어 버릴 것 같았다.
통역이 일본말로 옮겼다. 태준이 팔을 당기자 뒤에서 누르는 힘이 더 세졌다.
수사자는 봉투를 돌려 놓고 경성 동래여관의 주소와 문연화의 이름을 자기 수첩에 베꼈다.
펜촉이 멎을 때마다 태준은 다 썼나 보았다. 수사자는 한 번 더 봉투와 수첩을 맞춰 보았다.
만복이 겉옷을 집으려 하자 사내가 손목을 비틀었다. 만복은 소매가 팔꿈치에 걸린 채 문밖으로 밀렸다. 태준이 옷자락을 펴 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신은 신게 해 주세요.”
태준이 말했다. 통역이 그를 돌아보았다.
만복은 문턱에 걸린 한쪽 신을 발끝으로 끌어왔다. 뒤축을 밟은 채 계단으로 내려갔다. 태준에게 보인 것은 거기까지였다.
수사자들은 종이 묶음을 가져갔다. 벽 앞에 선 태준에게 아래층 주인의 중국말 항의와 짧은 호통이 들렸다. 만복의 발소리는 가려낼 수 없었다.
통역은 태준이 일하는 곳과 잠자는 곳을 다시 물었다. 동인제본소를 말하자 종이의 한 줄을 짚었다. 이미 알던 주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통역이 바닥의 종이를 발끝으로 가리켰다.
“네 건 챙겨 가. 부르면 와야 해.”
손이 떨려 계산서 두 장을 한 번에 집지 못했다. 편지와 봉투도 돌려받았다. 수첩에 옮겨진 글은 수사자의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태준은 독본을 다시 포개고 끈을 묶었다. 엄지 밑이 아팠다. 국수 그릇을 꺼내 상에 놓았다. 젖은 이불에서 삶은 밀 냄새가 났다.
제본소에 돌아오자 천량이 그의 팔부터 보았다. 중국인 제본공인 천량은 태준과 같은 작업대에서 일했고, 종이상과의 복잡한 말도 옮겨 주었다.
“여기까지 들었어?”
그가 소매를 걷자 태준은 괜찮다면서도 손목을 내주었다. 손가락을 펴면 엄지 아래가 당겼다.
“만복이를 어디로 데려갔대?”
“말 안 했어요.”
천량이 적셔 온 헝겊을 팔에 대고 태준은 편지를 받아 살폈다. 봉투 모서리가 젖어 있었다.
“이건 가져가지도 않았어요.”
“주소는 적었고?”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량은 봉투를 더 만지지 않았다.
그날 밤 태준은 원식에게 보낼 편지에 만복이 붙잡힌 날짜와 수사자가 먼저 부른 이름들, 연화의 수신처를 베낀 일을 적었다. 원식은 경성 제본소 선배이자 중국행을 소개한 연락 담당이었다. 연화에게 전해 줄 글은 별도로 접었다.
내가 쓰던 편지 겉봉에서 네 주소를 베껴 갔다. 네가 전에 적어 보낸 일과 이것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른다. 내 이름을 네가 알려 주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마. 여기서는 내 이름을 먼저 불렀다.
먼저 알았다는 것이 어디서 알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태준은 여관을 여기 일의 받는 곳으로 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다쳤으나 손을 움직일 수 있고 지금 제본소에 있다고도 썼다.
이튿날 아침 태준은 한경애의 방으로 갔다. 서른네 살의 조선인 한경애는 낮에는 빨래와 다림질을 맡았고 저녁에는 여자 일꾼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화로에서 다리미 두 개가 데워지고 있었다.
태준은 문을 닫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한경애는 다리미를 받침에 내려놓았다.
한경애는 오늘 돌려줘야 한다며 벽에 걸린 옷을 보았다.
“지금 가라고요?”
“다른 데서 주무실 수 있으면요.”
“이걸 들고 어디로요. 이 집 옷도 아닌데.”
태준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한경애는 옷깃을 마저 누르며 조금 비키라고 했다.
“제 이름도 적혀 있었어요?”
“이름을 불렀습니다. 종이에 있는 건 제 이름하고 이 선생님 이름만 봤고요.”
“그럼 나를 찾는다는 거네요.”
한경애는 다린 옷을 걷어 포갰다. 한 벌을 잘못 접었다가 다시 폈다.
“오늘 사람들 여기 오기로 했어요.”
태준이 밖을 보자 한경애가 말했다.
“아직 올 시간 아니에요. 내가 다니면서 말해야겠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다 같이 다니면 그 사람들 사는 데까지 보여 주게요?”
태준은 문에서 물러났다. 한경애는 옷을 맡긴 집에 들른 뒤 해 지기 전까지 짐을 맡아 달라고 했다. 태준은 천량에게도 물으러 잠깐 다녀오겠다고 했다. 한경애는 기다리겠다며 다리미를 화로에서 내렸다.
그날 오후 태준과 천량은 한경애의 이불과 살림을 제본소 뒤쪽에 들였다. 한경애는 책을 따로 안았다. 태준이 새 방에 치를 돈을 내놓자 한경애는 얼마인지 확인하고, 언제 갚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좋은 일 해 준 셈으로 없던 돈처럼 말하지 마세요. 빌린 건 내가 기억할 테니까.”
태준은 알겠다고 했다. 한경애가 나갈 때 새 거처를 물으려다가 멈췄다.
1월 15일, 조태섭이 제본소에 와 만복과 누가 함께 있었느냐고 물었다. 태준은 자기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태섭이 부은 손목을 잡으려 하자 태준은 팔을 뒤로 뺐다. 태섭의 손이 허공에 잠깐 남았다가 내려갔다.
“그렇게까지 했소?”
“그 사람들은 제 이름을 알고 왔습니다.”
태섭은 의자를 당겼다. 태준은 앉지 않았다.
“작년 가을에 소개해 주신 서씨는 어디 있습니까?”
“왜 그 사람을 묻소?”
“그때도 조선 안의 주소를 달라고 했잖아요. 누가 살고 언제 집에 있는지도요.”
“그 뒤로 나도 만나지 못했소.”
“북쪽에서 보냈다는 건 확인하셨습니까?”
“전해 준 사람 말을 믿었지. 내가 북쪽까지 가서 물어볼 수는 없지 않소.”
“만복이 방을 옮긴 것도 아셨지요.”
“알았소. 짐 나를 사람을 내가 구해 줬으니까.”
태준도 만복에게서 운반삯을 아꼈다는 말을 들었다.
태섭이 알고 있던 이름들이 수사자의 입에서도 나왔다. 태준은 그것을 말하려다가 천량을 보았다. 천량도 만복의 새 방을 알았고, 우씨 종이점과 한경애를 알았다. 객잔 주인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었다.
“조 선생이 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까?”
태준은 끝내 물었다.
태섭의 입가가 굳었다.
“내가 그랬다는 거요?”
“묻는 겁니다.”
“나는 만복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러 다니고 있소.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에도.”
태준은 그 말을 확인할 수 없었다. 태섭은 약을 바르라며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봉지를 꺼냈다. 태준이 받지 않자 작업대에 놓았다.
“쓰고 안 쓰고는 자네가 정해요.”
태준은 약봉지를 옆으로 밀었다. 가을 음식점에서 태섭이 시켜 준 국과 그 속의 두부까지 떠올라 속이 메슥거렸다. 태섭이 한 일이라고 아직 말할 수 없는데도, 그 밥을 먹던 자신이 싫었다.
오후에는 정헌이 아들 태성과 함께 왔다. 태준은 수사자가 읽은 이름과 종이에서 직접 본 이름을 나누어 말했다.
“조 선생에게도 물었습니다.”
정헌이 물었다.
“뭐라 하던가요.”
“아니라고도, 자기가 했다고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만복이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태준은 약봉지를 서랍에 넣었다. 자꾸 보니 치워 버리거나 당장 쓰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것 같았다.
태성이 원식에게 보낼 봉투를 살폈다. 태준은 연화에게 전할 글이 따로 들어 있다고 했다. 그날 우체국에서 원식 앞으로 편지를 부쳤다. 연화에게 언제 전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천량과 우씨 종이점에 갔다. 쉰 살쯤 된 중국인 우씨는 돈이 늦어도 정헌이 부탁한 종이를 먼저 내주곤 했다. 태준이 말을 시작하자 종이를 세던 일꾼을 다른 쪽으로 보냈다.
천량이 설명하는 동안 우씨는 태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납품 쪽지를 달라는 것이었다.
우씨는 쪽지의 가게 도장을 살피고 빠르게 말했다.
“종이 끊겠다는 말이야?”
태준이 묻자 천량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 일로 오는 물건은 여기 두지 말래. 돈 주고 사는 종이는 팔겠대.”
천량이 말을 더 옮겼다.
“자기 아들 둘도 여기서 일해. 그 사람들한테 설명할 수 없는 짐은 받지 않겠다고.”
태준은 아직 가져가지 않은 소식지 꾸러미를 오늘 치우겠다고 했다. 우씨가 안쪽 선반을 가리켰다.
태준과 천량은 무거운 꾸러미를 손수레에 옮겼다. 끈을 걸 때 우씨가 나와 바퀴 밑의 돌을 빼 주었다. 천량이 무슨 말을 하자 우씨가 손을 저었다. 종이는 앞으로도 팔겠다는 말이었다.
태준은 수레삯을 치르고 뒤에서 무게를 받쳤다. 굽은 길마다 꾸러미가 밀렸다. 매끈한 포장에는 붙들 데가 없어 천량이 멈춰 끈을 한 줄 더 걸었다.
며칠 동안 만복 대신 종이를 받으러 다니며 제본 일도 늦게까지 했다. 손이 아프면 천량이 바늘을 가져갔고 태준은 속지를 맞추었다. 순서를 거꾸로 놓은 날 태준이 사과하자 천량은 지금 보고 고치라고 했다. 둘은 열여섯 장을 처음부터 다시 세었다.
1월 27일 오후, 한경애가 빌려 간 독본 세 권을 가지고 왔다. 새로 모인 곳에는 네 사람이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당분간 쉬겠다는 말을 전해 왔다.
“네 사람한테는 책이 모자라겠네요.”
“같이 보면 돼요. 지난번에는 혼자 읽으라고 하니까 다들 입을 안 열더니, 둘씩 붙여 놓으니까 서로 틀렸다고 싸우더라고요.”
책 표지에 손톱만 한 기름 자국이 있었다. 태준은 문지르려다가 그만두었다.
“싸워도 읽기는 읽었겠네요.”
“나한테 맞는 쪽을 정해 달래요. 둘 다 틀렸는데.”
둘이 잠깐 웃었다. 한경애는 태준이 새로 묶은 책 대신 읽던 책을 골랐다. 손가락을 끼워 둔 곳을 펴 보이고 도로 닫았다.
태준은 주소를 묻는 대신 다음에 손상된 책도 가져오라고 했다. 한경애는 책을 안고 일어났다. 빌린 돈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고 했다. 태준은 들었다고 대답했다.
해가 기울 무렵 태성의 쪽지가 왔다. 만복의 구금 장소를 여전히 알아내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태준은 서랍에 쪽지를 넣다가 약봉지를 꺼내 부은 자리에 조금 발랐다. 약 냄새가 손에 남았다.
귀환용으로 모은 서른한 원 가운데 경고하러 다닌 차삯과 수레삯, 한경애에게 빌려준 방값으로 다섯 원을 썼다. 남은 스물여섯 원에서 배삯 스물두 원을 내면 네 원이었다. 인천에서 경성까지 가고 일자리를 찾는 동안 쓸 돈이 두 원 모자랐다.
태준은 이월 상순이라고 적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표를 산 날짜도 아닌데 고치기가 싫었다. 밀린 품삯을 받을 날과 장부를 넘길 날을 적었다. 돈이 들어오면 이월 하순 배를 물어볼 수 있었다.
천량이 물었다.
“가서 바로 일할 데는 있어?”
“원식 형한테 물어 놨어요.”
“돌아갈 거면 여기도 일 마칠 날을 말해 줘. 네 몫까지 받아 놓을 수는 없으니까.”
붙잡는 말이 없어 서운했다가, 말해 주기를 기다리며 일을 받고 있었을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장부까지 하고 말씀드릴게요.”
천량이 건넨 표지용 천을 잘라 놓고 편지 쓸 자리를 냈다.
연화에게 아직 표를 사지 못했다고 썼다. 이월 초에 갈 돈이 모자라고 늦춘 날짜도 확정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손의 붓기는 가라앉고 오늘 웃다가 입 안의 상처가 당겼다고 썼다.
그는 입술 안쪽을 혀로 만졌다. 이제 피 맛은 나지 않았다. 연화의 방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나은 자리를 보여 주고 가까이 온 손목을 붙잡고 싶었다. 그녀는 입을 벌려 보라며 웃을까. 다시 혼자 그녀의 반응까지 정하고 있었다.
편지에는 네가 화를 내면 듣겠다고 썼다. 먹고 싶은 것은 장을 보러 같이 가서 고르겠다고 덧붙였다.
밖에서 걸쇠가 맞지 않아 두 번 소리가 났다. 태준은 편지를 새 봉투에 넣었다. 주소를 적는 손이 멎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천량이 내일 쓸 바늘을 찾았다. 태준은 작업등을 제 쪽으로 조금 당기고, 천 조각 위에 바늘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끝이 굽어 있었다. 그는 곧은 것을 천량에게 건네고 굽은 것은 따로 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