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접수되지 않은 소식

7장접수되지 않은 소식

1931년 9월 26일, 상하이 동인제본소와 시내 음식점 · 윤태준

장부를 찾아갈 사람이 점심 전에 온다고 했다. 태준은 앞치마에 손을 닦고 마지막 표지를 덮었다. 풀을 바른 붓에서 털이 빠져 나와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다. 손톱으로 집으려다 표지가 밀렸다. 그는 속지를 받친 채 털을 떼고, 젖은 자리를 다시 문질렀다.

문 앞에 최만복이 서 있었다. 동인제본소와 가까운 인쇄방 사이에서 종이를 나르는 스물세 살 조선인 청년이었다. 만복은 들어오면서도 신발 바닥을 털지 않았다. 바지 끝에 묻은 진흙이 작업대까지 이어졌다.

“형이 나왔답니다.”

태준이 붓을 내려놓았다.

“언제?”

“그건 아직 몰라요. 이번 종이에 실을 수 있죠?”

만복은 접은 종이를 내밀었다. 지난 유월 일본 영사관의 경찰에게 붙들렸다고 만복이 전했던 형, 최만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석방이라는 두 글자가 이름보다 컸다.

“형한테서 온 거야?”

“같이 살던 강씨가 알아봤어요. 형한테 넣어 주려고 맡겼던 홑옷이 돌아왔대요.”

“강씨가 형을 만났고?”

“옷을 받은 집에서 그렇게 말했다는데요.”

바로 인쇄방으로 보내면 오늘 저녁에 돌릴 소식에 넣을 수 있었다. 남은 자리에도 꼭 맞았다.

“그 집에 가 보자.”

“지금요?”

“형을 봤는지만 물으면 되잖아.”

“그럼 이번에도 못 싣겠네요.”

태준은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다고 대꾸하려다가 붓을 물에 담갔다. 만복이 종이를 가져가려 했다. 태준은 잡지 않고 손을 비켰다.

“내가 못 믿겠다는 건 네 형이 나온 일이 싫다는 뜻이 아니야.”

“그건 알아요.”

만복의 대답이 빨랐다. 앞치마를 벗어 걸고 천량에게 사정을 말했다. 천량은 중국인 제본공으로, 태준과 이 작업대에서 삼 년째 일하고 있었다. 천량은 만복이 말한 음식점의 위치를 묻더니 오늘 돌려줄 견본을 종이에 쌌다.

“나도 그쪽에 갈 데 있어. 장부는 돌아와서 같이 들여다보고.”

“찾으러 오면요?”

“점심 전이라고 한 사람을 내가 아침부터 기다렸잖아. 그 사람도 조금 기다리라지.”

천량은 문간에 기다려 달라는 쪽지를 붙였다. 태준은 마르지 않은 표지 위에 깨끗한 판을 얹고 따라 나갔다.

만복이 앞서 걷다가 자꾸 두 사람 쪽을 돌아보았다. 태준은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옷을 맡아 주었다는 곳은 선창으로 내려가는 길의 작은 음식점이었다. 입구에 앉은 중국인 부인이 콩줄기를 다듬고 있었다. 천량이 말을 건네자 부인은 만복을 알아보고 안쪽을 가리켰다.

부인은 보퉁이를 꺼내면서 길게 말했다.

천량이 들은 것을 옮겼다. 부인은 옷을 돌려받았지만 최만수가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그러면 누가 나왔다고 했대요?”

태준이 물었다.

천량이 다시 묻자 부인은 손에 든 콩줄기로 바깥을 가리켰다.

“그 집에 음식을 넣을 때 옷도 가져갔어. 그런데 받지 않고 돌려줬대. 일본인 순사가 이제 여기 없다고 했고.”

“어디로 갔는지는?”

천량이 질문을 옮겼다.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만복은 보퉁이를 받았다. 매듭을 풀자 회색 홑저고리가 나왔다. 소매 끝에 덧댄 천이 조금 더 짙었다. 만복이 그곳을 뒤집어 보았다.

“이건 형 거 맞아요. 내가 꿰맸어요.”

태준도 기운 자리를 보았다. 그러나 옷을 받은 만복 옆에는 형이 없었다.

“언제 돌려받았는지 물어봐 주세요.”

부인이 가게에서 쓰는 달력을 들고 나와 한 칸을 짚었다. 천량이 십이일이라고 옮겼다. 그날 생선 장수가 오지 않아 점심 장사를 늦게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태준은 천량의 말을 듣고서야 옷이 돌아온 날과 만복에게 소식이 온 날이 거의 보름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최만수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여기서도 알 수 없었다.

부인이 만복에게 무엇을 물었다.

“밥은 먹었느냐는데.”

“먹었다고 해 주세요.”

만복의 말에 천량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부인은 빈 그릇을 챙겨 안으로 들어갔다. 만복이 저고리를 도로 접었다.

밖으로 나오자 만복은 아까의 종이를 꺼냈다. 석방이라는 글씨를 엄지로 눌렀다.

“강씨가 나오셨다고 하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태준은 만복이 자기에게 변명하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나왔을 수도 있어. 우리가 아직 못 만난 거고.”

“안 나왔을 수도 있죠.”

만복이 먼저 말했다.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한테 편지를 써 놨어요. 형이 나왔으니 돈 모아 둘 일 없다고.”

“부쳤어?”

“오늘 부치려고 했어요.”

돌아오는 전차에서는 만복이 창가에 앉았다. 태준은 셋의 차삯을 내고 서 있었다. 만복이 보퉁이를 당겨 자리를 조금 냈다. 태준은 그 곁에 반쯤 걸터앉았다. 만복은 형이 살아 돌아오면 자기가 새로 옮긴 방을 먼저 찾을지, 전에 살던 곳부터 갈지 물었다. 태준은 옛집에도 말을 남겨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제본소에는 정헌과 그의 아들 태성이 와 있었다. 정헌이 형을 만났느냐고 묻자 만복은 옷만 받았다고 대답했다.

태준은 석방을 알리던 종이를 인쇄방에 넘길 원고에서 뺐다.

만복은 그 손을 보고 있다가 남은 종이를 달라고 했다. 태준이 재단하고 남은 깨끗한 것을 내밀었다.

정헌이 원고를 넘기며 소식이 확인되면 따로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때도 돈이 들잖아요.”

만복이 대답했다. 정헌은 원고를 내려놓았다.

“그렇지요. 오늘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만복이 종이에 첫 줄을 쓰자 펜촉 긁는 소리가 났다.

태준은 천량과 장부를 살폈다. 표지는 밀리지 않고 붙어 있었다. 찾아온 손님은 기다리느라 늦었다고 투덜거렸다. 천량이 돈을 받았고 태준은 문밖까지 장부를 날랐다. 돌아오니 만복은 편지를 다 써 놓고 읽고 있었다.

“이 말이면 돼요?”

형이 나오셨다는 말은 들었으나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형의 옷만 돌려받았습니다. 돈은 보내지 마시고 우선 가지고 계십시오. 어디로 가셨는지 더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한테 돈 보내지 말라는 건?”

“어디로 넣어야 할지 모르잖아요. 여기로 보내셨다가 또 옮기면 돈만 들고.”

만복은 편지 끝에 자기는 새 방에서 잘 자고 있다는 말을 보탰다. 석방을 알리려고 가져온 종이는 보퉁이 옆에 따로 접어 두었다.

오후 일이 끝날 무렵 조태섭이 찾아왔다. 그는 중국말을 구사하며 모금과 연락을 중개했고, 정헌과 오래 왕래한 사람이었다. 손을 씻으라고 했다.

“저녁은 밖에서 먹읍시다. 만나실 분도 있고.”

정헌이 누구냐고 물었다. 태섭은 북쪽에서 연락을 맡아 온 분인데 오늘이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태준이 제 일을 가리키자 천량이 손을 내저었다.

“밥 준다는데 가. 내가 오라고 할 때는 안 오면서.”

“그건 일을 주려고 부르잖아요.”

천량이 웃으며 태준의 앞치마를 받아 걸었다.

음식점은 태준이 평소 지나가기만 하던 곳이었다. 태섭은 다섯 사람이 앉을 자리를 정하고 문 가까운 쪽에 자기가 앉았다.

서씨라고 성을 댄 사내가 먼저 일어났다. 북쪽에서 온 밀사라고 태섭이 소개한 사람이었다. 사내는 정헌에게 인사하고 태준에게도 두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책을 묶으신다지요. 이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태준은 태섭 쪽을 보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태섭은 중국말로 음식을 시켰다. 잠시 뒤 돼지고기와 채소를 볶은 접시, 두부가 든 국이 들어왔다. 태섭이 태준 앞에 접시를 밀었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먹어요. 나는 낮에도 먹었으니.”

그러나 말이 끝나기 전에 태섭의 젓가락이 고기로 갔다. 태성이 낮에 먹은 것과 저녁에 먹는 것은 다른 일 아니냐고 하자 태섭이 그 말이 맞다며 고기를 집었다.

태준은 처음 몇 입을 너무 빨리 먹었다. 그제야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것을 알았다. 태섭은 그릇이 빌 때마다 손을 들어 밥을 더 시켰다. 책값을 늦게 내는 집 이야기가 나왔고, 태섭은 이번에는 자기가 찾아가 받겠다고 했다. 그 집 주인이 태섭을 보면 뒷문으로 나간다고 태성이 말하자 정헌이 씹던 것을 삼키다 기침했다.

서씨도 웃었다.

“북쪽에서도 읽을 책이 모자랍니다.”

정헌이 어느 곳을 말하느냐고 묻자 사내는 길 이름 대신 철길에서 떨어진 마을들이라고 했다. 거기서 글을 가르치는 이가 사람을 더 붙여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책을 보내는 것도 돈이지만 받아 줄 곳이 있어야 하지요.”

서씨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여기서 연락을 받는 분들부터 알아 두면 서로 편할 겁니다. 조선 안으로도 이어져 있습니까?”

정헌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무슨 연락인지 먼저 말씀하시지요.”

“후원하는 분들에게 책이 가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해서요. 이름이 있어야 돈도 더 나옵니다.”

“책을 받는 이의 이름을요?”

“모임 이름만으로는 곤란합니다. 누가 맡고, 어디서 받는지.”

서씨가 태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경성에도 책을 보내신다지요. 받아 주는 댁은 누구 댁입니까?”

태준은 입 안에 남은 두부를 삼켰다. 아직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했다.

“제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하고 책이 함께 가면 더 좋지요. 집에 몇 사람이 사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낮에 비면 헛걸음하니까.”

그는 수첩을 상에 놓고 쓸 자리를 찾았다. 태섭이 찻주전자를 옮겨 주었다.

태준은 지난해 연화에게서 받은 편지를 생각했다. 경찰이 여관에 온 날과 이름을 쓰라고 한 일, 겉봉의 주소를 베껴 갔다는 말이 있었다.

“그 댁은 여기 일을 맡아 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 직접 물어볼 수 있게 주소만 주시면 됩니다.”

태준은 물잔을 집었다.

“오늘은 못 드리겠습니다.”

서씨가 그를 보았다. 그러나 연화의 일이며 여관의 형편을 여기서 설명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정헌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도 오늘은 이름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보내셨다는 분께 먼저 물어야겠소.”

서씨는 정헌이 전에 쓴 글을 읽었다고 했다. 조선 사람이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기 살림과 배울 일을 정해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정헌은 그 글을 어디서 받았느냐고 물었다. 사내는 여러 손을 거쳐 왔다며 웃었다.

“그 글을 보내셨다는 것과 이 부탁을 하셨다는 것은 따로 물어봐야겠습니다.”

태섭이 의자를 당겼다.

“제가 모셔 온 분인데, 밥상에서 너무 어렵게 하시는군요.”

태준의 귀가 뜨거워졌다. 빈 밥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태섭이 종이를 구해 나르고 밀린 책값을 받아 오던 날들을 떠올리면, 여기 앉아 대답을 거절하는 일이 느닷없이 야박하게 느껴졌다.

정헌은 태섭에게 얼굴을 돌렸다.

“조 선생이 애쓴 건 알고 있소. 오늘 이렇게 먹는 것도 고맙고.”

“제가 보증해도 안 되겠습니까?”

“연락을 맡아도 되는지는 제가 그 사람한테 물어야 합니다.”

자기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태섭은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씨가 수첩을 당겼다.

태성은 북쪽에서 필요한 책이 초독본인지 그다음에 읽을 책인지 물었다. 서씨는 둘 다라고 했다. 태성은 견본 한 권을 보여 드리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헌도 그러자고 했다.

태섭이 식으면 맛이 없다고 접시를 돌렸다. 태준은 채소 한 줄기를 집었다. 아까와 달리 씹는 데 시간이 걸렸다.

태섭이 값을 치르는 동안 태성은 서씨에게 견본을 어디로 전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사내는 태섭에게 맡기면 된다며 모자를 썼다.

돌아오는 길에 태준이 정헌에게 물었다.

“그분을 아십니까?”

“오늘 처음 보았소.”

“조 선생은 오래 아셨잖아요.”

정헌이 걸음을 늦췄다.

“내가 조 선생에게 도움받은 일은 여러 번이지요.”

서씨가 정말 어디서 온 사람인지도 태준은 알지 못했다. 이름을 묻는 말이 이상했던 것과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던 것인지는 아직 같은 답이 아니었다.

제본소로 돌아왔을 때 천량은 작업대 아래를 쓸고 있었다. 태성은 오늘 만난 사람이 서씨라고만 성을 댔다는 말을 종이 뒷면에 적었다. 정헌이 소개받은 말도 함께 적으라고 했다. 태준은 둘 곁을 지나 자기 편지 쓸 자리를 폈다.

그가 따로 모은 돈은 중국 돈으로 스물여덟 원이었다. 지난주 표 파는 곳에서 물어 적어 온 인천행 배삯은 스물두 원이었다. 인천에서 경성까지 갈 돈과 도착해서 며칠 지낼 돈은 거기에 없었다. 봄에도 같은 값일지 몰랐다.

태준은 돈을 꺼내 세다가 오늘 낸 전차삯을 떠올렸다. 몇 달 동안 받지 못한 품삯이 조금 있었고, 겨울 장부 주문이 들어오면 더 벌 수 있었다. 아직 주문받지 않은 장부를 생각하며 배표부터 사러 갈 수는 없었다.

서랍에서 연화의 편지를 꺼냈다. 연화는 요즘 저녁 일을 마치고 나면 무릎이 뻐근해서 앉은 자리에서 한동안 못 일어난다고 썼다.

그는 신을 벗어 뒤꿈치를 만졌다. 새 신의 안쪽 솔기가 살을 문질러 붉어져 있었다. 편지 첫머리에 신 이야기를 썼다. 연화라면 왜 아픈 것을 알고도 계속 신고 다녔느냐고 물을 것 같았다. 다른 신은 밑창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가, 이렇게 쓰면 신 사 달라는 소리 같아서 웃었다.

경성에서 연화가 일을 끝내고 들어올 때는 젖은 치맛자락을 먼저 털었다. 그는 편지에 요즘 어느 쪽 무릎이 아픈지, 잠자리는 여전히 문 가까운 쪽인지 썼다.

그러고 나서 봄에는 돌아가겠다고 적었다.

연화가 그 말에 맞추어 무엇을 미루거나 사 두는 모습을 생각하자 날짜 없는 약속을 그대로 두기 어려웠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다시 일 이야기 뒤로 밀어 두는 것도 싫었다.

태준은 돌아가겠다는 문장에 한 줄을 긋고 새로 썼다.

아직 탈 배를 정하지 못했다. 이번 겨울 품삯을 받아 봄에 갈 돈을 마련하려고 한다. 원식 형에게는 돌아가서 일할 곳이 있는지 묻겠다. 날짜를 정하면 다른 소식보다 먼저 적어 보내마.

그 아래에는 한참 망설이다가 문장을 보탰다.

네가 일을 마칠 때 내가 같은 데 있었으면 좋겠다. 무릎 아프다고 하면 오늘은 일어나지 말라고 하고, 내가 못 찾는 것을 네가 앉아서 가리켜 주었으면 한다. 네 옆에서 자고 싶다.

태준은 마지막 줄을 읽고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지우지 않았다. 배불리 먹었다고 쓰고 나니 연화가 제 식사는 했는지 궁금했다. 묻는 말 하나를 더 넣고 편지를 끝냈다.

봉투에는 경성 동래여관과 문연화의 이름을 적었다. 태준은 이 봉투를 내일 직접 우체국에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이미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간 주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천량이 바깥에서 다 썼느냐고 물었다. 태준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봉투 가장자리에 바른 풀이 손끝에 묻었다. 그는 깨끗한 헝겊을 당겨 손을 닦고, 벌어진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