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방에서 영옥이 무어라고 읽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손님들 신발이 다 놓인 뒤에야 벽을 넘어왔다. 연화는 이불을 펴다가 잠깐 귀를 기울였다. 읽는 소리가 끊기고 정숙의 기침이 났다. 영옥이 다시 시작했을 때는 조금 낮아져 있었다.
연화는 머리를 풀었다. 빗살이 같은 곳에서 두 번 걸렸다. 끝까지 빗지 않고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물을 덥히고 몸을 숙이고 젖은 머리로 앉아 있을 일이 한꺼번에 귀찮았다.
옷보퉁이 옆에는 갈색 공책이 있었다. 그 곁에 따로 놓아 둔 천량의 편지와 번역문을 천으로 덮었다. 등잔을 끄고 누우니 종이가 있던 자리만 어둠 속에서 보이는 듯했다. 연화는 그쪽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얼마 뒤 부엌 문을 열었을 때 태준이 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상의 다리를 누르고 있었다. 누를 때마다 맞은편 그릇이 작게 움직였다.
“이거 흔들려.”
연화는 문턱을 넘었다.
“그럼 누르지 마.”
“그릇 넘어질까 봐 그러지.”
“네가 자꾸 누르니까 움직이잖아.”
태준이 손을 떼었다. 연화는 자기 밥그릇이 없는 것을 보았다. 선반을 찾았다. 선반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는데 두 걸음을 걸어도 멀어지지 않았다. 돌아보자 태준은 빈 그릇을 내밀고 있었다.
“여기 있어.”
“그걸 왜 네 쪽에 놨어.”
태준이 상을 조금 밀어 주었다. 연화는 밥을 담았다. 그와 마주 앉았다. 태준의 소매 끝이 접혀 있었다. 푸르스름한 천이 보였다. 경성에서 입던 저고리였다.
연화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려다 국그릇을 당겼다. 그가 여기 앉아 있는데 길 이야기를 먼저 할 필요가 없었다.
“안 먹고 뭐 해.”
“같이 먹으려고.”
연화는 숟가락을 들었다. 밥에 조가 조금 섞여 있었다. 씹으니 껍질 하나가 어금니 사이에 끼었다. 태준이 달걀 부친 것을 반으로 나누었다. 노른자 있는 쪽이 연화 앞으로 왔다.
“너도 먹어.”
“내 것도 있어.”
그가 집은 쪽에는 흰자만 붙어 있었다. 연화는 제 것을 다시 갈라 상 가운데 놓았다. 노른자가 부서졌다. 태준이 그 조각을 밥 위에 얹었다.
그가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 연화도 배가 고팠다. 태준이 새우젓 그릇을 이쪽으로 밀었다. 그 손등을 보다가 연화는 젓가락을 놓쳤다. 젓가락 하나가 상 밑으로 굴러갔다.
태준이 몸을 숙였다. 연화도 동시에 숙여 이마가 부딪쳤다.
“내가 줍는다니까.”
그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입을 열 틈을 줘야지.”
연화는 그의 이마를 손끝으로 만졌다. 부딪친 곳을 찾는 척했지만 손을 떼고 싶지 않았다. 태준이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여기?”
“조금 옆.”
연화가 옮겨 만지자 그가 아프지도 않은 소리를 냈다. 태준이 웃었다. 그 웃는 입을 보고서야 연화는 자기가 밥을 입에 문 채 오래 씹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상을 물릴 때 태준이 그릇을 포개려 했다. 밑바닥까지 닦아야 한다고 하자 그는 두 손에 하나씩 들었다. 두 사람이 일어서니 방이 갑자기 넓었다. 상이 있던 자리 뒤로 문이 하나 더 있었고, 문 안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마룻바닥이 길게 이어졌다.
“저기는 뭐 하는 데야?”
태준이 물었다.
“아직 안 정했어.”
연화가 대답했다. 자기가 얻은 집인 것 같았다. 저 빈 곳에 남이 먼저 짐을 들여놓으면 싫을 것 같았다.
“거기다 네 일감 다 쌓지는 마.”
“책 몇 권인데.”
“몇 권이 자꾸 늘잖아. 내가 앉을 데부터 둘 거야.”
태준은 그릇을 내려놓고 빈 마루를 보았다.
“어디에?”
연화는 문에서 조금 비켜난 곳을 가리켰다. 앉으면 부엌이 바로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태준은 그쪽으로 가서 앉았다.
“이렇게?”
“네 자리를 고르라는 게 아닌데.”
“네가 와서 앉아 봐.”
연화는 그 곁에 앉았다. 태준의 다리가 제 다리 옆에 있었다.
“저녁 장사 끝나면 여기서 책 볼 거야.”
“나도 봐도 돼?”
“네 책 가져와서 봐.”
“같은 걸 보면 되잖아.”
“넌 먼저 읽고 넘기려고 하니까.”
태준이 대꾸하려다가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그의 턱이 가까이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뺨이 닿을 것 같았다.
마루 끝에 놓인 신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태준의 것이었다. 나갈 사람이 벗어 놓은 모양이어서 연화는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몸을 돌려 태준의 가슴에 얼굴을 댔다.
태준이 팔을 벌렸다. 연화는 무릎을 옮겨 그의 다리 사이에 놓았다. 그의 저고리에서는 마른 천 냄새와 기름 냄새가 났다. 코끝을 더 깊이 대자 태준의 가슴이 숨을 들이쉬며 올라왔다.
연화는 등을 둘러 안았다. 옷주름을 펴 가며 만졌다. 어깨뼈 아래가 단단했고, 옆구리로 내려가자 몸이 조금 피했다.
“간지러워.”
“가만있어.”
연화는 얼굴을 들고 그의 목 옆에 입술을 댔다. 수염이 짧게 자란 곳이 까슬했다. 태준의 손이 연화의 등에서 머리카락으로 올라왔다. 얽힌 곳에 손가락이 걸렸으나 당기지는 않았다.
“빗겨 줄까?”
“나중에.”
연화는 그의 손목을 잡아 등으로 도로 가져왔다. 태준이 손바닥을 펴서 연화의 허리를 받쳤다.
그를 원망하려고 준비해 둔 말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을 열면 자꾸 지금 필요한 말만 나왔다.
“좀 더 안아.”
태준이 팔에 힘을 주었다. 갈비뼈가 눌렸다. 연화는 숨을 짧게 내쉬고도 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 너머로 빈 상이 보였다. 그릇에 밥이 조금 남아 있었다. 마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내일은 아침에 깨우지 마.”
연화가 말했다.
“장에 안 가?”
“늦게 갈래.”
“그러면 좋은 건 다 팔렸다고 할 텐데.”
“그럼 있는 걸 사지.”
태준의 어깨에 뺨을 놓았다. 그의 손이 등을 천천히 오르내렸다. 연화는 내일 아침에도 저 손을 찾아 제 허리에 놓을 생각을 했다. 그가 먼저 일어나면 옷자락을 잡고 조금만 더 누우라고 할 것이었다.
그런데 부엌 쪽에서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 그릇을 놓아 둔 곳에 동래여관의 문설주가 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자기 방의 벽이 이어졌는데, 태준과 기대앉은 벽은 다른 쪽에 있었다. 어느 쪽이 바깥인지 알 수 없었다.
태준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내가 보고 올게.”
“가지 마. 내가 볼게.”
연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저고리를 놓지 않았다. 천천히 손을 풀었다. 손가락 자국대로 옷이 구겨져 있었다.
연화는 문을 밀고 빈 부엌을 보았다. 아궁이 앞에 젓가락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까 태준이 주운 것이 왜 저기 있는지 생각하다가 얼른 돌아섰다.
태준은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연화는 그가 없을 줄 알았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곁으로 돌아가 손을 잡았다. 손금의 패인 곳까지 느끼려 엄지로 문질렀다.
“왜 그래?”
“아무것도 없어.”
“뭐가 떨어졌는데?”
“몰라. 그냥 놔둬.”
연화는 그 시선이 제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가까이 앉았다. 무슨 말이든 계속 주고받으면 될 것 같았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은 우리…….”
입술이 더 움직였는데 말이 들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대야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났다. 연화는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쥐고 있는 것은 제 소매였다.
눈을 뜨자 벽이 코앞에 있었다. 연화는 소매를 놓고 등을 더듬었다. 손이 닿은 것은 말려 올라간 저고리 자락뿐이었다. 방바닥을 짚고 몸을 돌렸다. 접어 놓은 옷, 덮어 둔 종이, 문틈의 빛이 차례로 보였다.
태준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잠들었다. 그런데 눈을 뜬 직후에는 그 사실을 처음부터 다시 알아야 했다.
눈을 감고 방금 앉아 있던 마루를 생각했다. 태준의 말은 내일은, 거기서 더 가지 않았다. 그 뒤에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붙여 볼 수는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시 잠이 들지는 않았다. 방문 밖에서 정숙이 불렀다.
“깼니?”
연화는 대답하려다 목을 가다듬었다.
“네.”
정숙이 문을 조금 열었다. 손에는 접은 수건이 있었다. 빨랫감 받으러 나가기 전에 들렀다고 했다.
“어디 아프니?”
“꿈을 꿨어요.”
정숙은 문을 더 열지 않은 채 기다렸다.
“태준이가 왔어요. 같이 밥을 먹었어요.”
말하고 나니 상 위의 달걀이 생각났다. 연화는 그것부터 말해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달걀 이야기를 하면 대수롭지 않은 꿈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들어오실래요?”
정숙이 신을 벗었다. 연화는 이불을 밀어 자리를 냈다.
“무슨 얘기를 하더냐.”
“상 다리가 흔들린다고요.”
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지도, 이상하다고 하지도 않았다.
“내일 장에도 갈 것처럼 얘기했어요. 제가 늦게 일어난다고 했고요.”
연화는 손바닥을 펴 보았다.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데 못 들었어요.”
정숙은 잠깐 연화의 손을 보다가 수건을 내려놓았다. 이불 끝을 펴 주었을 뿐이었다.
“아주머니도 이런 꿈 꿔 보셨어요?”
“네가 꾼 건 나는 모르지.”
정숙이 연화의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더 누워 있을래?”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혼자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싫었다.
“아주머니 나가실 때 같이 나갈게요.”
정숙은 연화가 다리를 이불 밖으로 내놓고 버선을 찾을 때까지 곁에 앉아 있었다.
부엌에는 불린 북어가 대야에 담겨 있었다. 복임은 북어를 가리켰다. 살을 발라 놓으면 국은 자기가 끓이겠다고 했다. 연화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북어 등 쪽에 남은 가시는 손톱으로 잡아당겨야 빠졌다. 연화는 바른 살을 한쪽 그릇에 담고 가시는 빈 종이 위에 놓았다. 그동안 복임은 장에서 본 사람 이야기를 했다. 연화는 알아듣는 곳에서만 대답했다.
한 마리를 끝냈을 때 복임이 손님 상을 들고 나갔다. 연화는 따라 일어서려다가 다시 앉았다. 대야에 남은 한 마리를 제 쪽으로 당겼다. 복임은 돌아와서 왜 안 나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점심 뒤에는 연화도 부엌 앞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밥에 국물을 말았다. 반쯤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가, 복임이 보지 않는 동안 다시 들어 남은 밥을 입에 넣었다. 다 먹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었다. 그릇을 씻어 엎고 나니 아직 오후가 길었다.
영선은 일하는 식당의 점심 일이 끝난 뒤 여관에 돌아왔다. 저녁 전에 다시 나가야 한다며 정숙의 방에서 머리를 빗었다. 영옥도 마당에서 책을 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영선이 제 빗을 쓰고는 머리카락을 빼 놓으라고 했고, 영옥은 자기 머리카락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연화는 처마 아래에 널린 행주를 걷었다. 방에서 나온 영선이 신을 신다가 멈추었다.
“이거 네 거잖아.”
영옥도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둘은 비슷한 검정 신을 하나씩 바꾸어 신고 있었다. 영선이 오른발을 들자 영옥도 오른발을 들었다. 동시에 몸을 기울이다 어깨가 부딪쳤다. 영옥이 언니 팔을 붙잡았다.
“가만있어 봐. 내가 벗을게.”
영선이 말했는데 영옥은 이미 한쪽 신을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한 발로 서 있었다. 정숙이 방 안에서 두 발 다 내려놓고 하라고 했다.
연화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났다. 입을 가리기 전에 영옥이 이쪽을 보았다. 영옥도 웃었다. 영선은 신 두 짝을 바닥에 맞춰 놓고서야 동생의 팔을 놓았다.
연화는 행주의 접힌 귀를 당겼다. 웃음은 벌써 멎었는데 웃을 때 움직인 배가 낯설었다. 태준의 얼굴을 보고 웃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생각나지 않은 사이에 소리가 먼저 났다.
연화는 행주를 부엌에 놓고 제 방으로 갔다. 천으로 덮은 종이가 보였다. 덮개를 벗길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웃음을 없애려고 저 글을 다시 읽는 것 같아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거둔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 앉으니 머리카락이 목덜미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태준이 만져 주던 느낌을 찾으려 하자 엉킨 머리끝만 잡혔다.
정숙이 문 앞에 왔다.
“머리 감자. 물 덥혀 놨다.”
“아주머니 쓰세요.”
“나는 감았다. 네 것 남겼어.”
정숙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영선이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는 소리가 났다. 정숙이 돌아서서 저녁은 먹고 오느냐고 물었다. 영선의 대답이 멀어졌다.
“아까 저 웃었어요.”
정숙이 다시 문 안을 보았다.
“들었다.”
“웃고 나서 생각났어요.”
정숙은 문턱 옆에 앉았다. 한동안 마당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숙이 말했다.
정숙이 무슨 말이든 찾으려고 애쓰는 얼굴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머리 감겨 주세요. 혼자 하면 뒤가 자꾸 남아요.”
“그래. 나와.”
마당 구석에 대야가 놓여 있었다. 복임은 저녁 손님이 들기 전에 물을 치워야 한다고 했다. 연화가 서두르려 하자 정숙이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다. 복임은 물 한 주전자 더 데워 놓겠다고 했다.
연화는 대야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정숙이 빗으로 머리끝부터 풀었다. 걸리는 곳에서는 손으로 머리를 받쳐 당기지 않게 했다. 연화는 가만히 있다가 한 번 아프다고 말했다. 정숙은 빗을 빼고 손가락으로 그곳을 나누었다.
정숙이 바가지로 물을 떠 정수리부터 부었다. 물이 머리카락을 따라 내려와 대야 바닥을 쳤다. 연화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비누를 문지르는 손이 뒤통수에 닿았다. 손톱이 두피를 조금 긁었다. 시원해서 고개를 더 맡기려다가 무릎이 저려 몸을 옮겼다. 정숙이 물을 멈추었다.
“의자 가져올까?”
“조금만요.”
연화는 한쪽 다리를 펴고 앉을 자리를 바꾸었다. 물에 젖은 머리끝이 바닥에 닿기 전에 정숙이 받았다. 연화는 다리를 다시 접었다.
꿈에서 그와 앉아 있던 마루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손바닥을 놓았던 등의 넓이는 남아 있었다. 연화는 그것을 더 붙잡으려 하지 않고 물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다시 잠들면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정숙이 헹굴 물을 부었다. 눈가가 따가웠다. 손등으로 닦으려 하자 정숙이 마른 수건 끝을 내밀었다. 연화는 받아 눈 주위를 눌렀다가 돌려주었다.
“뒤쪽도 한 번 더 해 주세요.”
정숙이 목덜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연화는 귀를 막은 손가락을 조금 옮겼다. 정숙의 손이 지나갈 자리를 비켜 주고, 고개를 더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