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밥을 먹을 시간

4장밥을 먹을 시간

1929년 9월 9일~10일과 1930년 10월 17일~23일, 경성 동래여관 · 문연화

연화가 밥그릇을 들었을 때 정복임이 파를 더 썰어 달라고 했다. 숟가락은 아직 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연화는 그릇을 내려놓고 도마를 당겼다. 아까 썬 파가 소쿠리에 남아 있었지만, 복임은 저녁까지 쓰려면 모자란다고 했다.

파를 써는 동안 국 위에 기름이 엉겼다. 이번에는 마당에서 세숫물을 찾았다. 복임은 손님 방에서 이불을 걷고 있었다. 연화가 물을 떠다 주고 돌아오니 밥그릇에 파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그것을 떼어 내고 앉았다. 숟가락 끝에 찬 국이 닿았다.

“밥 먹는 동안은 다른 일 안 시키시면 안 돼요?”

복임이 품삯을 싼 종이를 선반에 놓았다.

“누가 밥 먹지 말랬니. 먹으면서 천천히 해.”

“파 썰면서는 못 먹어요.”

“그러니까 썰어 놓고 먹으라고 했지.”

저녁에 씻을 쌀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부터 담가 두면 뒤의 일이 편했다. 손이 먼저 움직이려는 것을 무릎 위에 눌러 두었다.

“아까도 밥 먹으려는데 부르셨잖아요. 아침 손님 다 나가면 먹으라셔서 기다렸고요.”

연화는 선반의 종이를 가져와 돈을 세었다. 지난달과 같은 액수였다.

“칠월부터 저녁 손님 늘면 일 원 더 주신다고 하셨죠.”

“늘기는 했어도 남는 게 있어야지. 쌀값 오른 건 너도 알잖아.”

“손님이 늘어서 늦게까지 하는 건 저예요.”

복임의 손이 솥뚜껑 위에서 멎었다.

“방 얻어 주고 끼니도 먹이는 걸 빼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처음부터 해 주셨어요. 저녁 일 늘기 전에도요.”

여기서 나가라고 하면 당장 어느 방으로 가야 할지 몰랐다. 자기 밥집을 얻으려고 모은 돈을 방세부터 내는 데 쓰게 될 수도 있었다.

복임은 부엌 문에 기대어 마당을 보았다.

“나도 앉아서 먹은 날이 드물다.”

“그러면 아주머니도 앉으세요. 아주머니 드실 때는 제가 보고, 제가 먹을 때는 아주머니가 보시면 되잖아요.”

“말은 쉽다.”

“며칠 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얘기해요.”

“점심 손님 그릇 내고 나면 네 밥부터 먹어라. 쌀 씻는 건 그 뒤에 하고. 대신 밥 먹겠다고 불 올려 놓은 솥까지 내버리지는 말고.”

연화는 돈을 싼 종이를 접지 않았다.

“일 원은요?”

“내일 아침에 줄게.”

“그럼 저녁 일은 지금처럼 할게요.”

“네가 이제 아주 장사꾼이 다 됐구나.”

연화가 일어나려 하자 복임이 손을 저었다.

“그건 내가 덥힌다. 앉아 있어.”

연화는 다시 앉았다. 복임이 국을 덥혀 주는 동안 밥을 먼저 먹었다.

마당에서 손님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복임이 먼저 대답하고 나갔다. 연화는 입 안의 밥을 다 삼킨 뒤 국을 떠먹었다. 자기 밥그릇을 앞에 놓고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이 어색했다.

복임은 이튿날 아침 연화에게 일 원을 주었다. 연화는 돈을 받아 허리 주머니에 넣었다. 고맙다는 말이 나오려다 멎었고, 그 대신 오늘 저녁에 생선을 구울지 물었다. 복임은 비싸면 사 오지 말라고 했다.

그날 오후, 연화는 정숙의 방에서 편지를 보았다.

정숙은 여관에 방을 빌려 사는 이정헌의 아내였다. 세탁 품을 팔았고, 남편과 아들은 상하이에, 두 딸은 톈진에 있었다.

오늘은 큰딸 영선이 보낸 편지가 와 있었다. 정숙은 봉투 끝을 손톱으로 벌리고 있었다.

“칼 가져올까요?”

“뜯었어.”

정숙은 찢어진 봉투를 무릎으로 누르고 편지를 폈다. 연화는 문 가까이에 앉아 걷어 온 옷을 개었다.

정숙이 첫 줄을 읽다가 멎었다. 연화가 몸을 기울이자 정숙이 종이를 조금 당겼다.

“모르는 글자 있으면 그때 물을게. 지금은 내가 읽을게.”

“네.”

정숙이 천천히 글을 읽는 소리가 났다. 영선은 어머니가 부친 돈으로 동생의 신을 샀다고 썼다. 자기 것은 아직 신을 만하다고 했다.

“또 제 건 안 샀네.”

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선은 구호원의 셈과 밥 짓는 일을 쓰고, 경성에서 할 일과 어머니 방에 자기와 동생이 들어갈 자리를 물었다.

“방은 어떻게든 되지.”

그 말을 듣고 연화가 이불을 둘 곳을 짚으려 하자 정숙은 편지 아래를 손으로 덮었다.

“아직 뒤가 남았어.”

연화는 무릎을 도로 당겼다.

영옥은 어머니가 지난 편지에서 임옥희와 영옥을 섞어 옥영이라고 썼다고 항의했다. 정숙은 그 줄에서 코로 웃었다.

“내가 내 딸 이름을 몰라서 그랬겠니.”

“그렇게 답장 쓰시게요?”

잠깐 마주 보다가 정숙도 웃었다.

“그러면 또 한 장 가득 써서 보내겠지.”

정숙은 다 읽고 편지를 내밀며 영선이 작게 덧붙인 말만 물었다. 일할 곳을 알아보더라도 자기가 가서 본 뒤 정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열일곱도 안 된 것이 벌써.”

“저도 처음 여기 올 때 부엌은 보고 왔어요.”

“보고도 왔니?”

“그때는 저 솥이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죠.”

둘이 함께 웃었다. 정숙은 지난해 칠월 이십팔일자 가족 편지와 새 편지를 종이에 싸서 자기 옷보퉁이 밑에 넣었다.

연화가 방에서 나오려 하자 정숙이 물었다.

“너도 편지 써야 하지 않니?”

“저녁 일 하고요.”

“그러다 또 졸면서 쓰겠다.”

태준에게 부치려다 만 편지와 지난가을 그가 보내온 이야기책이 제 방에 있었다. 책은 벌써 끝까지 읽었지만 중간에 나온 사람이 누구였는지 헷갈렸다.

그날 밤 연화는 품삯이 오른 일과 앉아서 밥을 먹은 일을 적었다. 태준의 편지에 같이 사는 사람은 없어 서운했는데, 자기 편지에도 정숙의 이름은 드물었다. 영선의 편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지난가을 소포에 들어 있던 편지에서 태준은 돌아가 나란히 누우면 할 말이 많겠다고 했었다. 연화는 아무도 없는 자리로 손바닥을 조금 옮겨 보았다가 펜을 다시 잡았다.

네가 오면 나는 자다가도 깨워서 말할 거야. 졸리다고 뒤돌아 눕지 마.

그 아래에는 오늘 밥을 먹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썼다.

1930년 10월 17일 아침에는 정숙의 방에 경찰이 들어왔다.

연화는 상을 들고 마당을 건너다가 두 사내를 보았다. 복임이 먼저 나갔지만 앞선 사내는 방 번호부터 물었다. 뒤의 일본인 경부가 손에 든 종이와 방문들을 번갈아 보았다.

앞선 사내가 경찰서 고등계의 남기수라고 이름을 댔다. 일본인 경부가 무슨 말을 하자 남기수가 정숙의 방을 가리켰다.

정숙이 젖은 손을 치마에 닦으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중국에 있지요.”

정숙은 그렇다고 답했다.

“들어가 봅시다.”

정숙이 신을 벗는 동안 일본인 경부는 신발을 신은 채 방에 들어갔다. 연화는 상을 부엌에 내려놓고 돌아왔다.

남기수는 남편과 아들의 이름을 묻고 적었다. 두 딸이 있는 톈진의 구호원 주소도 가져오라고 했다.

정숙이 옷보퉁이 밑에서 편지를 꺼냈다. 남기수는 봉투들을 한 장씩 돌려 보았다.

“임선애, 임옥희. 딸 이름은 이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쓰는 이름이에요. 영선이하고 영옥이예요.”

“왜 바꿨습니까?”

“남편이 그렇게 적어 보냈어요. 본래 이름도 같이 있고요.”

남기수가 편지를 펼쳤다. 일본인 경부는 이불을 지팡이 끝으로 들추었다. 접힌 홑이불이 바닥으로 풀렸다.

남기수는 톈진 남문 안 수안골목 17호라는 주소와 두 딸의 본명·생활명을 자기 종이에 옮겨 썼다. 정숙이 남편은 지금 상하이에 있다고 말하자 남기수는 그쪽 주소도 달라고 했다.

“주방에서 사람들 모여 책을 본다지요.”

남기수가 갑자기 연화를 올려다보았다.

“밥일 끝나고 같이 본 적은 있어요.”

“누구하고?”

“여기 일하러 오는 사람들하고요. 이야기책이에요.”

“가져와 보세요.”

복임이 부엌 문 앞에서 책 한 권 보는 것도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남기수는 손을 내밀었다. 연화는 제 방에 가서 책을 가져왔다.

“어디서 났습니까?”

“아는 사람이 보내 줬어요.”

“어디 사는 사람인데.”

“상하이에요.”

남기수가 책을 덮고 빈 종이를 내밀었다.

“그 사람 이름하고 받을 주소를 씁시다.”

“책 보내 준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확인만 하면 되잖아요. 자꾸 묻고 또 오게 하지 말고.”

정숙이 다음 주에 딸들을 데리러 역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기수는 그러면 받을 편지도 더 있겠다고 했다.

종이를 무릎에 놓으니 펜촉이 떨려 첫 획이 두껍게 번졌다. 윤태준이라고 적었다. 중국말 주소는 읽을 수 없어서 최근에 받은 겉봉을 가져왔고, 남기수가 그것을 보고 베꼈다.

“이 사람도 책 만드는 일을 합니까?”

연화는 그렇다고 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일본인 경부가 남기수의 종이를 보고 그와 일본말을 주고받았다. 편지와 책은 돌려받았지만, 이름과 주소를 적은 종이는 남기수가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복임은 대문을 닫고 한동안 빗장을 쥐었다.

“중국에서 오는 편지가 죄다 무슨 일 있는 편지인 줄 아니.”

연화는 정숙의 방에 들어가 바닥에 풀린 홑이불을 집었다. 신발 밑창 자국을 손으로 털자 흙이 가늘게 떨어졌다.

“내가 이름 쓰지 말았어야 했어요?”

정숙은 편지의 접힌 자리를 맞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다. 안 쓰면 안 쓴다고 또 묻겠지.”

태준에게 물어볼 사이도 없이 남의 이름을 써 주었다. 그런데 무엇을 달리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남기수가 기다리던 손만 떠올랐다.

그날 밤 연화는 태준에게 경찰이 온 날짜와 물은 것, 이름과 주소를 적어 갔다는 말을 썼다. 종이가 어디로 갈지, 그들이 이미 무엇을 아는지는 적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장에 가는 길에 부쳤다.

10월 23일 오후, 정숙이 두 딸을 데리고 여관 대문으로 들어왔다.

영선은 어머니보다 어깨가 조금 높았고, 영옥은 품에 보퉁이를 안은 채 한쪽 신을 뒤축으로 밟고 있었다. 정숙은 딸들의 팔을 번갈아 잡다가 영옥의 보퉁이를 받으려 손을 뻗었다.

“내가 들게.”

영옥이 몸을 돌렸다. 신이 벗겨져 발뒤꿈치가 드러났다. 영선이 중국말로 짧게 뭐라고 하자 영옥이 눈을 흘겼다.

“뭐랬어?”

“신부터 신으라고.”

영선은 동생의 보퉁이를 잠깐 받아 주었다. 영옥은 신을 바로 신고 언니에게서 짐을 도로 가져왔다.

정숙이 연화를 소개하자 영선은 인사를 하고 부엌을 보았다.

“엄마 편지에 나오던 데가 저기예요?”

“응. 내가 빨래 삶는 데는 뒤에 있고.”

정숙은 딸을 데리고 마당을 다 보여 주려 했다. 영선이 보퉁이를 내려놓았다.

“앉았다가 볼게. 다리가 아파.”

“그래, 들어가자. 내가 정신이 없네.”

정숙은 방문을 열었다. 딸들이 올 날을 정한 뒤 복임과 셋이 지낼 방값을 다시 정했고, 세탁 일까지 줄여 이불을 빨았다. 연화는 문밖에 신들을 나란히 놓았다.

영옥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의 팔을 잡고 얼굴을 소매에 묻었다. 연화가 물을 가져왔을 때는 코끝이 빨개진 채 벽을 보고 있었다. 정숙은 영선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네 손이 왜 이렇게 됐어.”

“빨래하고 나면 그래. 엄마도 그렇잖아.”

영선이 손을 빼서 무릎에 놓았다. 정숙은 그 손 대신 딸의 치마 끝을 펴 주었다.

영옥이 마시기 전에 물었다.

“여기서도 책 같이 봐요?”

“가끔. 일 다 하고.”

“나는 계속 배우고 싶은데.”

“배워야지. 어디서 배울지 알아봐야지.”

“일 많으면 다음에 하라고 하지 말고.”

연화는 부엌 쪽을 보았다. 저녁에 쓸 채소가 아직 바구니에 있었다. 영옥은 물을 두 손으로 들고 마셨다.

영선이 물그릇을 받으며 말했다.

“나는 밖에서 일할 곳을 볼래. 여기서 엄마랑 같이 살고, 일은 딴 데서.”

“여관에서 거들면 내가 네 얼굴도 보고 좋지 않겠니.”

“엄마가 좋다고만 정하지 마.”

연화는 빈 그릇을 모아 일어나려다 영선이 제 쪽을 보는 것을 보고 앉아 있었다.

“편지에도 썼어요. 일은 내가 가서 보고 정하고 싶다고.”

“읽었어.”

“그럼 왜.”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다.”

영선은 물그릇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사흘은 쉬어. 그 뒤에 보러 다니자. 네가 싫다는 데로 보내지는 않을게.”

“품삯도 내가 물을 거야.”

“옆에서 말 보태면 그것도 싫겠니?”

“내가 물어보고 나서 보태.”

연화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정숙도 웃다가 손바닥으로 자기 무릎을 쳤다.

“그래.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

복임이 문 앞에 와서 저녁은 여관 밥으로 먹으라고 했다. 다만 내일부터 식사할 시각은 정숙과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영옥이 몇 시에 먹느냐고 물었다. 복임은 부엌에서 부르면 오라고 하다가, 곧 해 지기 전에 먹게 해 주겠다고 고쳐 말했다.

해가 기울자 연화는 제 몫과 세 사람의 밥을 펐다. 정숙이 나와 반찬을 담으려 하자 복임이 오늘은 딸들 곁에 있으라고 했다. 문턱에서 영선이 상 한쪽을 받았다. 둘은 서로 손을 놓는 때가 맞지 않아 상을 잠깐 공중에 들고 있었다.

“제가 놓을게요.”

영선이 말하자 연화가 손을 뗐다. 국이 조금 출렁였지만 쏟아지지 않았다.

넷이 앉으니 팔꿈치를 조심해야 했다. 영옥이 무릎을 펴려다가 언니의 다리를 건드렸고, 영선은 발 좀 가만히 두라고 했다. 정숙은 자기 숟가락을 찾지 못했다. 연화가 손에 들려 있다고 말하자 영옥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연화도 웃으며 밥을 먹었다. 복임이 부엌에서 솥뚜껑을 여는 소리가 났지만 연화를 부르지는 않았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에 닿았을 때에도 아직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이불을 펴고 정숙이 가운데 누우려 하자 영선이 잠결에 영옥의 발에 차일 거라고 했다. 영옥은 요즘은 안 찬다고 우겼다.

“그럼 엄마가 한 번 자 봐.”

영선은 문 쪽에 자기 베개를 놓았다. 영옥은 어머니 안쪽에 자리를 잡고, 짐에서 꺼낸 빗을 머리맡에 두었다.

“내일은 자는 동안 나가지 마.”

“빨래 받으러 가야 하는데.”

“깨고 나서 가.”

“내일은 그러마.”

연화가 제 방에서 이야기책을 가져오자 영옥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제 같이 봐도 돼요?”

“조금만. 나도 오늘은 여기서 읽을 거야.”

정숙이 접던 천을 치워 자리를 내주었다. 영선은 앞의 이야기를 모르면 못 알아듣느냐고 물었다. 연화는 자기도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영옥은 벌써 책 속의 한 사람 이름을 짚고 있었다.

연화는 책을 무릎에 두었다. 정숙이 등잔을 가까이 옮겼다. 영선이 빗질을 멈추고 이쪽을 보았다.

첫 문장을 읽다가 끝의 작은 글씨를 놓쳐 책을 조금 들어 올렸다. 영옥이 턱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여. 그렇게 안 와도 보여.”

영옥이 웃으며 물러났다. 연화는 책을 조금 낮추고, 놓친 글자 앞에서부터 다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