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남의 이름으로 보내는 편지

2장남의 이름으로 보내는 편지

1928년 7월 25일~28일, 톈진 · 이정헌

솥 바닥에서 주걱 긁는 소리가 났다. 정헌이 고개를 들자 큰딸 영선이 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밥알이 한쪽으로 모였지만 한 사람 몫도 되지 않았다. 영선은 그것을 동생 영옥의 그릇에 털어 넣고 주걱에 붙은 것까지 손가락으로 떼었다.

“나는 아까 먹었어.”

영옥이 그릇을 밀었다.

“뭘 먹어. 아까부터 같이 있었는데.”

영선이 쏘아붙였다. 영옥은 숟가락으로 밥을 눌렀다. 누르니 그릇 바닥이 더 넓게 드러났다.

정헌은 벗어 놓았던 조끼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는 동안 아들 태성이 빈 솥에 물을 부었다.

“조 선생이 보내 준 쌀은?”

“그건 사흘 전에 떨어졌어요. 그 뒤로는 제가 교정삯 받은 걸로 조금씩 사다 섞었어요.”

태성은 물에 풀어진 밥알을 저었다. 쌀 사이에 좁쌀이 많아진 것은 알았지만, 남은 곡식을 섞어 먹는 줄 알았다. 아들이 따로 돈을 썼다는 것은 지금 처음 들었다.

“왜 말을 안 했니.”

“말씀드리면 쌀이 더 생겨요?”

태성이 솥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영선이 주걱을 받아 들었다.

동전은 밖에서 국수 두 그릇을 사 먹을 만큼은 되었다. 넷이 나누면 된다고 말하려다, 영옥이 밥그릇을 언니 쪽으로 조금씩 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문밖에서 조태섭이 정헌을 불렀다.

태섭은 모금과 연락을 중개하며 여러 해 정헌과 왕래했다. 지난겨울 인쇄소에서 맡긴 책을 찾아올 때도 수레를 구해 주었다. 쌀자루를 메고 문턱을 넘다가 빨랫줄에 걸리자 허리를 숙였다.

“빨래부터 내릴걸 그랬군요.”

영선이 줄을 들어 주자 태섭은 자루를 벽에 붙여 놓았다.

“곡물상 가는 길에 생각이 나서요. 어제 저녁에 가져오려다 늦었습니다.”

정헌이 돈을 꺼내려 하자 태섭이 조끼 주머니를 손등으로 가볍게 막았다.

“이건 댁에 드리는 겁니다. 모금한 돈에서 덜어 온 것 아니고 제 돈으로 샀어요.”

“받기만 해서 어쩌나.”

“그 말씀 하시면 다음에는 자루째 못 들고 와요. 밥은 아직입니까?”

태섭은 솥을 보았다. 영선이 뚜껑을 덮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지금 쌀 씻으면 늦어요. 나가서 먹지요. 나도 아직 못 먹었습니다.”

그가 먼저 영옥의 신을 문 쪽으로 밀어 주었다. 영옥은 언니를 쳐다본 뒤 그릇을 내려놓았다.

국숫집에서는 태섭이 네 사람이 앉은 뒤에야 제 자리를 만들었다. 영옥이 고추기름 병을 만지려 하자 태섭이 제 그릇에 먼저 한 방울 떨어뜨렸다.

“이만큼만.”

영옥은 따라 하다가 두 방울을 넣었다. 한 입 먹고 코를 훌쩍였다. 영선이 물을 밀어 주면서 웃었고, 영옥은 물을 마신 뒤에도 맵지 않다고 우겼다. 정헌은 그제야 제 국수를 들었다.

태섭이 소매를 걷으며 물었다.

“상하이로 가져가실 책 견본은 다 보셨습니까?”

정헌은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세 장째가 잘못됐어요. 받침이 빠진 데가 있고, 두 줄이 바뀌었소. 오늘 표시해서 보내야겠네.”

“거기서 다시 찍을 수 있겠지요?”

“찍기 전에 고쳐야지. 잘못된 채로 배우게 할 수는 없으니.”

상하이에서 온 것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저녁에 볼 초독본 견본이었다. 정헌은 종이값을 대다가 이제는 문장을 보고 연락을 이었다. 이번에 상하이로 가려는 것도 그 책과 끊긴 지원을 어떻게 이을지 만나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밥 먹고 보세요.”

태성이 말했다. 정헌이 다시 품에 손을 넣고 있었다. 그는 손을 빼고 젓가락을 들었다.

집에 돌아온 뒤 정헌은 견본을 폈다. 영선이 쌀을 씻는 소리가 들렸다.

초독본과 함께 돌릴 소식지 견본에는 체포된 사람의 가족이 소식을 받을 곳이 적혀 있었다.

“이 주소도 같이 찍는다고 했니?”

태성이 다가와 보았다.

“받아 적은 사람이 넣었습니다. 그 집에서 널리 알려도 된다고 했는지는 편지에 없어요.”

정헌은 주소를 둘러 표시하고 옆에 확인을 청하는 말을 썼다. 일본 경찰의 검열을 피해 밖에서 찍는다고 해서 받는 집까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종이를 태성에게 건넸다.

“소식은 보내되, 이 대목은 답을 받고 넣자.”

태성이 자기 교정 종이를 가져와 옆에 앉자 정헌은 자리를 비웠다.

이튿날인 26일, 정헌은 두 딸과 태성을 데리고 해명여자구호원에 갔다.

담 안쪽에서 이불을 터는 소리가 났다. 씻은 그릇 곁에서 아이 둘이 서로의 젖은 소매를 짜 주고 있었다. 영옥은 걸음을 늦추고 언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생활 담당인 린자오가 나와 중국말로 인사하고 자매를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정헌은 의자와 물을 권하는 말은 알아들었다. 생활 설명이 길어지자 태성 쪽으로 몸을 돌렸다.

태성이 옮겼다. 밥과 잠자리는 마련되지만 옷과 비누, 배우는 데 쓰는 종이는 가족이 가능한 만큼 보탠다고 했다. 아침에는 글과 셈을 배우고 나이에 맞추어 부엌과 빨래 일을 나눈다고 했다.

영선이 중국말로 무언가 물었다. 정헌은 공부하는 시각을 묻는 것까지 알아들었다. 뒤에 이어진 말은 놓쳤다.

“뭐라고 했니?”

“일이 밀리면 공부를 못 하느냐고요.”

영선은 다시 린자오를 보았다. 식사 준비가 늦어지는 날도 있지만 영선 혼자 동생 몫까지 맡지는 않는다는 대답을 태성이 옮겼다.

“언니하고 같은 방에 있을래요.”

영옥의 말을 영선이 중국말로 전했다. 린자오는 지금 비어 있는 방에서 함께 잘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방을 바꾸게 되면 미리 이야기하겠다는 말은 태성이 옮겼다.

린자오가 이름을 적은 종이를 내놓았다. 영선은 임선애, 영옥은 임옥희였다. 길에서 아이들까지 알아보고 집안 사정을 묻는 사람들이 있어 정헌이 며칠 전 따로 쓸 이름을 제안했다. 린자오는 본명도 남겨 두겠다고 했었다.

영선이 종이를 자기 앞으로 당겼다.

“그럼 여기서는 저를 선애라고 불러요?”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저한테는 아직 안 물으셨잖아요.”

정헌은 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안에서 쓰는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안에서 저를 부를 이름인데요.”

영옥이 언니의 팔에 기대어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엄마도 옥희라고 써야 해요?”

“봉투에는 그 이름을 써야 여기서 찾기가 쉽지. 안에는 네 이름을 쓰면 된다.”

“엄마가 잘못 쓰면요?”

정헌은 린자오에게 물었다. 두 이름을 함께 적어 두니 어느 쪽으로 와도 찾아보겠다는 답은 알아들었다. 영옥에게 그대로 말해 주었다.

영선은 연필을 받아 본명과 생활명을 나란히 적고 동생의 이름도 선으로 짝을 맞췄다.

“엄마한테 이렇게 보내세요. 영옥이 이름하고 제 이름이 바뀌면 안 되니까.”

정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데 일하러 보내려면 저한테 먼저 물어보세요. 아버지한테만 묻지 말고요.”

태성이 그 말을 옮기자 린자오는 영선에게 직접 대답했다. 일자리가 생기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여기 왔다고 곧 일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가지 않겠다고 해도 되는지 영선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정헌도 알아들었다.

린자오는 그렇다고 했다.

방을 보고 나오는 길에 영옥이 정헌의 손가락을 깊이 쥐었다.

“아버지도 여기 있어요?”

“나는 여기서 잘 수가 없다.”

“그럼 오빠는요?”

태성이 고개를 저었다. 영옥은 발끝으로 작은 돌을 밀었다.

“엄마한테 가면 안 돼요?”

정헌은 딸을 담 그늘로 데려갔다. 영선도 따라왔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너희 둘을 경성까지 데려다줄 수가 없다. 어머니 방도 두 사람이 더 잘 자리가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하고.”

“아버지는 상하이 가잖아요.”

영선이 말했다.

“그래.”

“그 돈은 있어요?”

정헌은 태성이 대신 대답하게 두지 않았다.

“내가 갈 돈은 남겨 놓았다.”

영선은 입을 다물었다. 정헌은 덧붙이려던 말을 삼켰다. 상하이에서 할 일을 길게 설명하면 아이들을 이곳에 두는 일이 저절로 옳아지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다.

잠시 뒤 영선이 말했다.

“엄마한테 빨리 써 주세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

“모레까지 부치마.”

“같이 있는 것도요.”

정헌은 잊지 않겠다고 했다.

27일 오후에는 자매의 옷을 가져갔다. 영선은 제 보퉁이를 직접 들었다. 정헌이 받아 주려 하자 무겁지 않다며 등을 돌렸다. 영옥은 방에서 쓰던 작은 빗을 들고 갔다. 보퉁이에 넣으라고 하자 이를 부러뜨릴까 봐 싫다고 했다.

구호원 방에는 이부자리 두 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영옥은 벽 쪽에 빗을 놓았다. 영선은 옷을 풀다가 동생에게 어느 쪽에서 잘 것인지 묻고 이부자리를 밀어 주었다.

영선이 앉으라고도 나가라고도 하지 않아, 정헌은 문 근처에서 보퉁이 천의 빈 끝만 건넸다.

“이것도 두고 가마.”

“빨래할 때 쓰면 돼요.”

영선이 받아 접었다.

린자오가 자매에게 오늘은 자리를 익히기만 하라고 말했다. 영선은 중국말로 대답하고 동생을 데리고 채소를 다듬는 아이들에게 내려갔다. 영옥이 돌아보자 정헌은 손을 들었다. 딸도 작게 흔들었다.

영옥이 채소 끝을 잘못 떼자 옆 아이가 다시 보여 주었다. 영선은 동생 대신 손을 뻗다가 거두고 다른 채소를 집었다.

밖으로 나온 뒤 정헌은 태성에게 물었다.

“아까 영선이가 뭐라고 했니?”

“할 수 있는 것부터 알려 달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더 이상하다고 했어요.”

정헌은 구호원 문을 돌아보았다. 안에서 웃음이 났지만 누구의 웃음인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집에서는 네 사람이 쓰던 자리를 둘이 치웠다. 영옥이 돌돌 말아 베던 옷가지가 없어 벽 아래가 드러났다. 정헌은 그 자리에 책을 옮기려다 멈췄다. 태성은 빈 솥을 씻어 엎고 일감을 폈다.

정헌이 화로 앞으로 갔다.

“제가 할게요.”

“불은 나도 피운다.”

종이를 너무 많이 넣어 연기가 먼저 났다. 태성이 와서 종이 한 장을 빼고 숯 사이를 벌렸다. 아들은 웃지 않았지만 입 한쪽이 조금 올라갔다.

“책 고치시는 것하고는 다르죠?”

“매일 했으면 나도 잘했겠지.”

말을 하고 나니 변명 같았다. 정헌은 부채를 받아 천천히 저었다. 불이 붙을 때까지 아들을 부르지 않았다.

28일 아침, 정헌은 경성의 아내 한정숙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두 아이가 지낼 곳을 구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적었다가 붓을 들었다. 염려가 없을 일은 아니었다. 정숙은 지난해 경성으로 돌아가 동래여관에 방을 얻고 세탁 품을 팔고 있었다. 잘 있을 것이라고 적힌 지난 편지만 갖고 있었다.

그는 첫 줄을 지우고 입소 날짜부터 썼다. 영선이 적어 준 종이를 곁에 놓았다.

영선이는 임선애, 영옥이는 임옥희라는 이름으로 지내오. 두 이름을 서로 바꾸어 쓰지 않도록 본명도 함께 적어 보내오. 아이들에게 보낼 편지는 톈진 남문 안 수안골목 17호, 해명여자구호원으로 보내 주오. 두 아이는 같은 방에 있소.

태성이 교정 종이를 내려놓았다. 정헌은 비누와 종이, 철에 맞는 옷이 더 필요하니 형편이 되면 생활비를 보내 달라고 썼다.

그는 곧바로 상하이에서 돈을 마련해 보내겠다고 쓰려다가 멈췄다. 태성이 받을 교정삯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받지도 않은 아들의 돈이었다.

“상하이에서 네가 버는 것 가운데 얼마나 집에 쓸 수 있겠니?”

태성은 정헌을 보았다.

“방값하고 제 밥값을 내고 남는 걸 봐야 합니다.”

“그래. 아직은 모르지.”

“제가 안 보태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렇게 듣지는 않았다.”

태성은 ‘태성이와 의논하여’라는 구절을 보았다.

“그건 고쳐 주세요.”

“상하이 가는 걸 말하는 거다.”

“저는 거기서 교정 일을 하겠다고 했어요. 영선이하고 영옥이를 여기에 두자는 뜻까지 같았던 건 아닙니다.”

정헌은 붓 끝을 벼루에 얹었다.

“린 선생과 한 이야기는 네가 다 옮겨 주었잖니.”

“제가 옮긴 말하고 아버지가 정하신 일은 다릅니다.”

태성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헌은 얼른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제가 같이 정했다고 읽으실 거예요. 그럼 나중에 영선이가 화를 내도 제가 대답해야 하고요.”

정헌은 아들이 옮긴 말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의논’이라고 묶어 적으려 했다.

그는 종이를 당겨 해당 구절 위에 선을 그었다.

“내가 정한 일을 네 뜻이라고 쓰지는 않겠다.”

정헌은 그 아래에 자기가 상하이 일을 계속하려고 딸들을 맡겼다고 적었다. 같은 방에 있게 해 달라는 말과 일자리를 정하기 전에 자기 뜻을 물어 달라는 영선의 말도 넣었다.

“네가 한 말도 적을까?”

“어느 말이요?”

“방값하고 밥값을 낸 뒤에 보탤 수 있는지 알겠다는 말.”

“그건 제가 아래에 쓰겠습니다.”

정헌은 편지 아래를 비워 두었다.

태성은 상하이에서 맡을 교정 일과 정하지 못한 품삯을 적었다. 정숙이 읽다가 막힐 만한 글씨가 보였으나 정헌은 손을 대지 않았다. 아들이 소리 내어 읽자 한 글자만 다시 써 달라고 했다.

정헌은 보낼 수 있는지, 보낸다면 언제쯤 가능한지 아내가 답해 달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을 경성으로 데려오는 일도 혼자 정하지 않겠다고 썼다. 본명과 생활명을 한 번씩 짚었다.

오후에 태성과 구호원에 가서 편지를 읽어 주었다. 영선은 자기 요구가 들어간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고, 영옥은 어머니가 언제 답할지 물었다.

“편지가 가는 데도 날이 걸린다. 어머니가 받고 써서 보내면 다시 기다려야 해.”

정헌이 말했다. 영옥은 날짜를 세려는 듯 손가락을 폈다가 접었다.

“그럼 제 것도 넣어 주세요.”

영옥은 배운 글씨로 언니 안쪽에서 잔다고 쓰고 빗을 가져왔다는 말도 적었다. 영선은 자기 편지는 자기 앞으로 보내 달라고 썼다. 동생에게 보여 주지 않을 말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자 영옥이 언니 팔을 쳤다.

“내가 언제 다 봤어.”

“아직 안 왔으니까 못 봤지.”

정헌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끝을 잡아 주었다. 영선은 다 쓴 글을 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접어 그가 내민 봉투에 넣었다.

우체국에서 정헌은 봉투 앞면을 다시 보았다. 경성 동래여관, 한정숙. 안에는 두 딸과 아들의 글이 함께 들어 있었다.

정헌은 우편료를 치르고 한정숙의 이름을 쓴 봉투를 창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직원이 봉투를 가져간 뒤에도 그는 손을 잠깐 그 자리에 두었다. 태성이 비켜 주자 기다리던 사람이 창구로 갔다. 정헌은 아들을 따라 나왔다.

길 건너 국숫집에서 삶은 물을 내다 버렸다. 태성이 정헌의 팔꿈치를 잡아 뜨거운 물길을 피하게 했다. 둘은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건너편으로 가면 구호원에 들를 수 있었다. 영옥은 저녁 전에 빗에 낀 머리카락을 빼는 법을 다시 보여 달라고 했다. 정헌은 아직 볕이 남은 쪽으로 돌아 길을 건넜다.